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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한동훈 장관을 이길 수 없는 이유?

비컷 2023. 6. 24.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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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를 보면 참 신기하다.

이런게 뉴스가 되는구나?

이번에는 한동훈 장관이 주차장에서 우산을 직접 쓰고 등장하는 모습이다.

 

사실 뉴스에서 나오는 국내의 모습들 비교는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더라.

비교 되는건 맞는데... 굳이 서로 까내릴 필요는 없다.

좋은건 좋은대로 좋은 것들과 비교해도 된다.

왜냐고? 자꾸 더러운 것들하고 같이 비교하고 노출되면 점점 같아 보인다. (이건 다음에 이야기 한번 하겠지만 민주당이나 야당에서 자꾸 총선 출마 어쩌고 하는거랑 결을 같이한다)

나는 오바마가 보좌진을 기다렸다가 같이 우산 쓰고 오던 장면이 떠올랐다.

(오바마가 어깨동무 했으니 스캔들 뽀X노인가? 이런 사고의 수순이 나오는게 스스로도 참 웃긴다)

 

민주당 외 떨거지(알아서 들어라)들이 한동훈 장관을 이길 수 없는 이유는 꽤 있는데 오늘은 관점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사람은 보고싶은대로 보고 듣고싶은대로 듣는다. (개눈엔 똥만 보인다)

우선 뉴스를 먼저 생각해보면, 한동훈 장관이 우산을 직접 들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참 합리적인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게 더 편하고 빠르고 효율적이다.

내가 장관이니깐! 확! 마! 무조건 떠받들어! 이런 마인드만 살짝 덜어내면 이게 확실히 효율적이다.

그런데 우산 좀 직접 든다고 장관이 장관이 아닌가? 아니면 장관이 우습게 보이나? 권위가 무너지나?

 

보좌관도 보면 우산을 넘겨 받으려다 노력은 한다.

오히려 마음이 조금 불편(?)할 수도 있을거다.

그런데 한동훈 장관이라면 평소에 대동소이하게 이런 모습들이 당연히 쌓여 있을거다.

그냥 나는 생각된다.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모습을 보면서 그냥 또 까고 싶은 사람들은 카메라가 있어서 한동훈 장관이 저런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 맞다. 카메라가 있어서 그랬다.

 

이 장면 봐라. 입구에 도착해서 우산을 접고 보좌관에게 우산 들고 가세요~ 한다.

이게 무슨 의미냐고? 입구부터는 프레스 라인이 있다.

카메라를 의식한다. 아니 배려한다.

젖은 물기 묻은 우산을 들고 가면 마이크, 카메라, 그리고 혹은 렌즈를 피해 쪼그려 있는 기자들에게 물이 흐를수도 있다.

무엇보다 출근 시간 효율적인 동선과 기다렸을 카메라들을 위해 배려하는 모습으로 비친다.

 

사실 그냥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라는 느낌이다.

몸에 배여 있다. 뭐가? 에티켓. 그게 그냥 애티튜드로 스며나오는거다.

보좌관이 우산을 들어야지? 그게 룰인가? 꼭 지켜야만 하는 룰인가?

영전 가이드에는 있을수도 있겠지만 상황에 따라 대상자의 의도대로 맞춰가는게 영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배려해주는 행동인 에티켓은 안하면 그만 하면 땡큐의 영역이다.

다만 에티켓을 지켜 누군가를 배려해주면 그 만큼의 존중은 받아야 한다.

아주 간단한 에티켓도 몰라보고 카메라를 의식했다?

종종 이야기 하겠지만 개눈엔 똥만 보인다.

 

공무원인데 하는 일이 정치가 얽혔는가? 그냥 정치질만 하는 공무원인가?

한동훈 장관과 민주당(외 떨거지)들이 대정부 질문이나 국회 회관(밖에서는 소송각) 등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극명하게 다르게 느껴진다.

 

뭐가?

"국민"이라는 단어가 어디에 위치하고 어떻게 쓰이는지 말이다.

민주당은 "국민"을 주로 자신들의 의견을 대변할 때 이용한다.

5천만 국민이, 대다수의 국민이 이렇게 원한다! 국민들의 대표인 국회의원한테!

이 말이 참 싫은게...

일단 5천만에서 한 명은 빼줬으면 좋겠다. 나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국민에는 포함되지 않는가보다.

다음은 명분도 책임도 국민에게 돌려놨다. 국민을 팔아 먹었으니 자기 책임은 아니다.

응?

 

그리고 다시 한동훈 장관의 "국민"을 떠올려보자.

국민들이 판단하실 겁니다.

그리고 장관이 어떤어떤 일을 할거고 그 이로움이 더 많은 국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일하겠다.

자신이 책임을 지고 일을 하고 그 결과로 가능한 많은 국민들이 더 좋아지는 삶을 가지길 원하는 대상으로 바라본다.

 

사람의 말과 행동은 하품과 방구마냥 애티튜드로 그냥 나타나게 된다.

국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또 자신의 포지셔닝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국민을 방탄용, 회피용, 병풍 등으로 활용하는 쪽에서는 "정치질"만하는 공무원으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한다.

정치를 해도 공익을 위한 정치를 하면 되는데, 당파 싸움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그냥 물고 뜯고 싸움질만 하는 "정치질"에 열을 올리는가?

민주당(외...)가 하는 질문들을 듣다보면 그냥 일반적인 상식이나 논리적인 사고의 범주를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그게 정치질만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무넹 발생하는 오류다.

그런데 정작 그 안에서 하루종일 정치질만 하는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개눈엔 똥만 보이고 딱 그정도 수준에서는 정치도 아닌 정치질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동훈 장관을 보자.

정치를 한다. 아니 정치질을 하는 사람들과 상대를 해야하니 정치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는 공무원이다. 그게 먼저다.

그러니 국민을 위해 일하는게 소임이다.

법무부장관의 포지션에서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의 역할과 범위 등등을 스스로 명확하게 선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공무원인데 정치질에 말려있는 사람이라 정치를 하게 되는거지 정치를 할려고 정치질에 말려 싸우는게 아니다.

 

공무원과 정치인(?).

그 간극 만큼이 한동훈 장관과 민주당의 클라스 차이다.

그런데 말이다. 사람들이 지저분한 정치질만 자꾸 보다보니 뭔가 잊고 있다

국회의원도 공무원이다. 그냥 자기 일 안하고 정치질을 더해서 공무원처럼 안 보이는거다.

 

반칙 vs 원칙

이건 그냥 소제목으로 갈음하자.

대충 알겠지?

괜히 구설수 오르는거 싫어서 회식도 안 다니고 술도 안 마시는 사람한테 어디 지들 노는 수준에 맞춰 룸빵 가져다 붙이다 개털린 사건을 떠올려보자.

반칙이 듣기에는 당장 그럴싸하고 이기는 듯 느껴지지만, 원칙을 이길 수는 없다.

아니 사실 원칙이 우선 되어야하는 사회여야 하는데 지금까지 반칙과 변칙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용인되어 왔다.

지독하게 원칙인 사람들(!)이 등장하는 반칙과 변칙이 비교되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비교 대상이 없을 때, 말로 선동하고 이미지만 던졌을 때는 반칙이 유리하다.

반칙이잖아? 그냥 막 던지면 된다.

그런데 원칙이 있을 때는 비교가 된다. 판단 기준이 뚜렷하게 생겨버린다.

 

이게 원칙인지? 반칙인지? 궁금할 때는 이런 방법을 한번 써봐라.

내가 이 명제를 자식이나 조카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삼촌 인스타에 저 사람들 왜 손가락 하나씩 들고 있어?"

나는 이 질문을 상정했을 때 대답을 하지 못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우리나라 선거법에 4대 원칙이 있는데... 비밀...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서는 사상 검증이라는게 있는데 같은 편은 서로 알아보게 그룹을 만들어야 해서... 아....

외국에서는 저렇게 정치성향 너무 들어내면 길가다 총맞고 막 그러는데... 우리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라서...

"국민의 표현의 자유라던데?"

.................. (!@#$@$^!$^@!#$!#%^%^#)

(그러고 다음 총선에서 국민의 표현의 자유는 못하도록 선거법이 바뀌었다고 한다)

 

좋은 예시가 됐을까? 그냥 평소 생각하던 말을 풀어봤다. 응?

반칙과 변칙이 난무하는 시대이기에 오롯한 원칙은 더욱 빛날 수 있다.

민주당이 지금처럼 반칙과 변칙만을 구사한다면 땡큐다.

원칙은 원칙으로써 더욱 가치를 더해갈테니.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로 안주거리로 삼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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